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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아침 먹고 서울에서 점심 먹는 그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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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북동행 작성일15-02-04 17:34 조회1,0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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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하나원을 수료하고 갓 사회로 나왔을 때 어느 선배 언니가 "딱 3년만 고생하면 되, 3년이 고비다"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올 해로 한국 생활이 4년차가 되어가는데 이제는 한국사회 일원이라는 자부심도 생기고 여유있는 마음으로 이 사회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원을 수료하고 배정 받은 아파트로 입주했던 그 첫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가구 한 점 없이 텅 빈 집, 낯선 동네, 그리고 알 수 없는 이웃들.....

열심히 잘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하나원을 떠났지만 눈앞의 현실들은 우리의 마음을 막막하게 만들었습니다. 친구도 친척도 없는 이 곳에서 우리는 과연 잘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었습니다.

 

그 며칠 동안 어머니와 저는 집 청소와 살림 차리는 데만 전념했던 것 같습니다. 물건 값은 왜 그렇게도 비싼지..... 어머니와 저는 한국에 오기 전 중국에서 약 7년을 살았었습니다.

그래서 물건을 살 때마다 자연스럽게 무의식적으로 중국의 가격과 비교하곤 햇습니다. 중국보다 거의 7배정도 비싼 물건들은 우리로 아여금 아무것도 사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전전긍긍 하다가 여기는 한국이라는 것을 드디어 깨닫고 하나하나 사들이기 시작했지요. 저의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으로 인해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것은 "높은 물가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 나는 일들이지만 그 당시에는 매우 고미스럽고 심각한 일들이었으니까요.

 

처음으로 상경했던 그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학교에 입학하는 문제 때문에 하나원에서 알게 된 선생님 만나러 서울 안국동으로 갔던 날입니다.

아침 8시 경 종로3가 역에 내렸는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저는 서울 사람 모두가 거기에 모여서 무슨 행사라도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웠던 것은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뛰어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이렇게 많은 사람ㄷ르이 도대체 어디로 저렇게 급히 가는 것일까?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선생님을 만나 물어보았더니 그 시간이 직장인들 출근 시간이어서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서울 사람들은 얼마나 바쁘고 치열하게 사는지를 피부로 느꼈던 하루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덧 저도 서울 사람이 다 외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고 치열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아무리 고가의 물건을 보아도 놀라지도, 중국의 가격과 비교하지도 않습니다. 이 모든 변화들은 제가 한국사회에 적응했다는 증거 아닐까요?

많은 사람들이 "탈북자 적응 실태와 적응 방안"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토론합니ㅏㄷ. 그리고 "당신은 적응을 했다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을 저에게 자주 하곤 합니다.

"적응"이란 무엇인가요?

어떤 사람들은 한국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며 한국문화를 이해한다면 "적응을 잘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물론 한국사람처럼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그리고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한국생활 적응하는데 도움이 되고 도한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 사람과 한국문화를 매우 잘 이해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적으을 못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적응"이란 무엇일까요?

첫째로 탈북자가 스스로를 진정한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생각하고 이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때 진짜 "적응"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즉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사회에 대ㅏㄴ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만의 꿈과 비전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탈북자"라는 신분 때문에 위축되고 소외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낼 때 진짜 "적응"을 했다고 봅니다. 사실 얼마 전가지만 해도 저는 이 두가지를 잘 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스스로를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중국사람"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습니다. 저의 청소년 시기 전부를 중국에서 보냈으니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 일것입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탈북자 중, 특히 어린 시절 중국에서의 자랐던 사람들은 거의 다 중국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에서의 추억 때문에 한국 사회에 불만을 가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진정한 한국사회 일원으로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저는 "탈북자"라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중국에서 왓다고 거짓말을 했고 나중에는 강원도에서 왔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또한 같은 탈북자 친구들을 피했습니다. 그들과 같이 잇으면 왠지 적응에 방해가 되는 것 같고 심지어 나중에는 "나는 너희들과 달라"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완벽한 "한국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런 저의 생각 덕분에 대입검정고시도 단기간에 합격했고 한국어도 남들보다 빨리 배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없었고 심지어 사회와 단절된 느낌마저 들었고 정체성이 흔들리기까지 했습니ㅏㄷ.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나는 왜 한국에 왔는가?"라는 생각을 하루에 몇 번이나 했었습니다. "나"를 숨기고 산다는 것은 정말로 죽기보다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우연히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탈북자" 선배를 마났습니다. 그 선배가 저에게 이러 말을 해주었습니다. "나는 우리 탈북청년들은 한국에 유학 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발전된 문화와 제도를 배워서 나중에 북한 사회를 재건하는데 헌신해야 하고 항상 북한을 위해 고민하고 지금 고향에 남아았는 부모형제들을 위해 누구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책임감을 가지고..."

 

그 선배의 말은 저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고 저의 생각과 저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제 스스로를 "북한에서 유학 온 대학생"이라고 생각하고 정체성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그러니 "탈북자"라는 신분이 오히려 더 자랑스러웠습니다. 한국친구들을 만날 때 내가 겪은 북한사회를 이야기 해주고 그 곳에도 똑 같은 사람ㄷ르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북한을 향한 비전과 사명감이 앵겼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저는 북한이 왜 저렇게 가난 할 수밖에 없는지를 몰랐고 그 문제에 대해 생각조차 하기 싫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알게 되었고 앞으로 제가 북한을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꿈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앞으로 "북한을 사람이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드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 노력 할 것입니다. 이 꿈을 위해 저는 저의 전공을 "중국어학"에서 "정치외교"로 바꾸었습니다.

중국어를 전공하면 저는 좋은 학점을 받으면서 대학4년을 편하게 보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취업도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 꿈을 이루는 데는 "정치외교"라는 전공이 더 도움이 되고 이 길을 끝까지 갈 수 있도록 붙잡아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이제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리고 당당한 탈북대학생으로서 매일매일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로 인해 북한과 통일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는 한국 친구들을 보면 왲ㄴ지 뿌듯한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통일"을 너무 거대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서로를 경계하고 어렵게 대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우리가 만나는 것 자체가 "통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국 사람들과 탈북자들의 만남 그 자체로 우리는 이미 "작은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평양에서 아침 먹고 서울에서 점심 먹는 그 날"을 저는 오늘도 상상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모두에게 "우리 함께 희망을 가지고 '그 날'을 기다리자"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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