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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북한을 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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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북동행 작성일15-02-04 17:47 조회1,0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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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그곳은 창살 없는 감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 누가 감시하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행동 하나, 말 한 마디 조심해야 한다. 군(群) 지역 이상을 벗어날 때는 통행증이나 여행허가증이 필요하다. 라디오와 TV는 중앙방송에 고정돼 있다. 방송이든 신문이든 모든 매체는 한국과 미국을 비난하고, 김정일과 그의 행적을 찬양하고, 북한 체제의 우월성에 대해 떠들어댄다. 지난 60년 동안 김 부자(父子) 정권은 북한 주민들이 ‘진실’에 눈 뜨지 못하도록 외부세계의 정보를 철저히 차단시켜 왔다.

그런데 최근 북한 주민들의 의식과 행동이 예전과는 사뭇 달라졌다는 소식이 속속 전해져온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남한 드라마와 영화가 있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남한 영상물이 널리 퍼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드라마 속 주인공의 스타일을 따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연일 보도되고 있다. 한 마디로 ‘북한판 한류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MBC 드라마 ‘역전의 여왕’의 김남주 스타일을 선호하는 북한 여성들,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현빈이 입고 나온 트레이닝복을 구하려고 하는 북한 부유층 자제들의 소식은 신기하기만 하다.

내부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남한 드라마와 영화의 영향력 보여주는 기사는 흥미로웠다. 하지만 다소 단편적이라는 생각이 들던 차에 북한의 한류현상에 대해 분석한 『한류, 북한을 흔들다』(강동완․박정란 공저, 늘품플러스)라는 책이 출간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책은 ‘남조선 바람’을 학술적으로 조명한 최초의 보고서란 평가를 받고 있다. 저자는 탈북자 33명의 심층면접을 통해 북한에서 남한 영상매체의 유통 구조, 남한 영상매체를 시청한 북한 주민들의 의식변화, 이에 대한 북한 당국의 대응, 남한 영상매체와 북한 체제의 변화의 가능성을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1990년대 중․후반 북한의 대량아사 사태 이후, 중국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들과 시장을 통해 외부 정보와 문화가 유입․확산됐다고 주장한다. 식량난 이후 북한 당국의 통제가 이완된 상황에서 친지 방문이나 장사를 목적으로 지역 간 자유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남한 영상매체 유통이 확산된 것이다.

북-중 국경지역, 특히 함경북도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중국으로 왕래하기 용이하다는 점에서 남한 영상매체의 유통과 시청이 많이 이뤄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북-중 국경지역은 물론 북한 내륙 전역에 걸쳐 남한 영상매체가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다는 점에 저자는 주목한다. 책에 따르면 혜산, 나진을 비롯한 국경 도시의 경우 중국에서 들어온 남한 영상매체를 북한 전역으로 유통하는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상인들은 주로 혜산에서 평양, 순천, 김책, 함흥, 원산 등지로 이동하며 영상매체를 유통시키고 있다.

저자는 검열원이 주민들로부터 압수한 남한 영상매체를 자신의 친지나 지인들과 함께 돌려보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영상매체 유통 및 시청은 일반 주민들뿐만 아니라 간부 계층까지 확대되고 있으며, 특히 유통의 경우 간부 및 간부의 배우자 등이 상인들과 함께 조직적으로 연계돼 있다고 주장한다.

남한 영상매체를 보면서 북한 주민들은 ‘진실’과 마주한다. 저자는 탈북자들이 남한 드라마나 영화에서 흰쌀밥에 대여섯 가지 반찬이 오르는 밥상, 부모방, 부부방, 아이들 방이 별도로 있는 집, 집안에서, 외출할 때, 잠잘 때 모두 다른 옷을 입는 사람들을 보며 남한이 북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는 것을 느꼈다고 전한다. 또 북한에서는 자기가 아무리 능력 있고 일을 열심히 해도 자기 것이 될 수 없지만, 자본주의는 자기 능력만큼 일한 것을 다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라는 탈북자의 이야기도 소개한다.

북한 주민들의 남한 영상매체 시청은 의식변화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위양식의 변화와 문화적 모방으로 이어진다. 책에 소개된 한 탈북자의 경우 평양에서 본 남한식 헤어스타일을 사진으로 찍어 미용사에게 주며 그대로 해 달라고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또 드라마에서 배우가 하고 나온 머리핀과 ‘쫑대바지’(몸에 딱 붙는 일자형 바지) 등을 따라 입었다는 사례, 남한 말투를 흉내 내다 소년단 지도원에게 발각된 사례도 나와 있다.

북한 내에서 남한 영상매체 유통이 급속히 확산되고 옷차림이나 말투 등 문화적 변화가 생기면서 북한 당국은 이를 강력히 통제하고 있다. 비사회주의 그루빠가 조직돼 남한 드라마 CD 단속을 강화하는 한 편, 평양을 비롯한 북한 전역에서 “이색적인 사상 요소나 생활 풍조가 내부에 스며들지 못하게 함으로써 혁명의 수뇌부의 안전과 사회주의 제도를 더욱 믿음직하게 보위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남한 영상물 단속에 적발되는 경우 노동단련형이나 징역형 심하게는 사형에까지 이르기도 한다고 탈북자의 증언을 통해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남한 영상매체를 보다가 적발될 경우, 검열원이 한 명일 경우는 뇌물을 주고 풀려나는 경우가 많다. 검열 시에는 대부분 인민반장이 미리 알려줘 단속에 대처하도록 한다. 저자는 결국 북한 당국의 통제와 이완 사이에서 위로부터의 엄격한 통제 시스템은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틈새를 파고들며 남한 영상매체는 더욱 확산되기에 이르렀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북한 사회에서 남한 영상매체를 통한 외부정보 유입이 티핑 포인트(폭발적 성장과 함께 나타나는 질적 변화)로서 기능할 수 있을까? 저자는 답변은 긍정적이다. 북한 주민의 남한 영상매체 시청은 북한 체제 변화를 촉진하는 다른 요인과 상호 결합할 경우 북한 사회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혹자는 페이스북․트위터․유튜브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없는, 게다가 정치범 수용소와 연좌제 등 강력한 통제 시스템이 작동하는 북한에서 아래로부터의 변화는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깨지지 않는 유리는 없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베를린 장벽도 결국 붕괴됐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수 있었던 이유는 동독 사람들이 서독의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서독의 발전상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한 영상매체도 북한 주민들이 외부세계를 볼 수 있는 ‘진실의 창’이 될 것이다.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도 갖지 못한 채 억압과 통제 속에서 살아온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 드라마 속 한국은 신세계와도 같은 곳일 것이다. 남한 드라마가 탈북에 유인 작용을 했듯이 북한 민주화에 있어서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지속적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 영상매체를 통해 외부정보를 유입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조선중앙방송보다 남한 가요와 드라마를 사랑하는 북한의 젊은 세대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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